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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맛의 바탕, 다시(出汁)

The Page 2026. 10. 01

보이지 않는 맛의 바탕, 다시(出汁)

일본 요리에서 다시(出汁)는 거의 모든 맛의 시작에 있습니다. 맑은 국은 물론이고 오히타시와 면 요리에 이르기까지, 형태를 드러내지 않은 채 수많은 요리의 바탕에 존재합니다. 흔히 ‘일본식 육수’라고 번역하지만, 다시가 일본 요리 안에서 하는 역할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합니다. 다시는 하나의 완성된 국물이기보다, 그 위에 놓이는 재료의 맛을 선명하게 만드는 바탕에 가깝습니다.

다시를 내는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섬세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다시마와 가쓰오부시에서 가능한 한 많은 맛을 뽑아내는 것이 언제나 좋은 다시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물의 온도와 재료가 머무는 시간을 조절하며 필요한 맛은 끌어내고, 잡미가 따라오기 전에 멈춰야 합니다. 단순한 재료로 이루어져 있기에 오히려 무엇을 얼마나 끌어내고 어디에서 멈출지가 맛을 좌우합니다.

여기에는 일본 요리가 재료를 대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재료가 가진 맛과 향을 어디까지 끌어낼 것인지,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남겨둘 것인지에 따라 같은 재료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일본 요리에서 맛을 만든다는 것은 언제나 무언가를 더하는 일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재료가 가진 것을 충분히 끌어내되 지나치지 않고, 가장 좋은 순간을 알아보고 멈추는 것 역시 맛을 만드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좋은 다시의 역할도 이와 닮아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앞세우기보다 함께 놓인 재료가 가진 맛을 가장 좋은 지점까지 끌어냅니다. 그 계절의 단맛과 향을 더 또렷하게 만들고, 서로 다른 재료가 가진 맛을 자연스럽게 이어 한 접시의 깊이를 만듭니다. 분명 존재하지만 자신의 맛으로 모든 것을 덮지 않습니다. 다시가 일본 요리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좀처럼 주인공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다시가 들어간 요리를 먹을 때 반드시 ‘다시 맛이 난다’고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생선의 맛이 유난히 맑게 느껴지고, 채소의 단맛이 또렷하게 남으며, 서로 다른 재료가 한 국물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그 뒤에는 다시가 있습니다. 다시 자체를 맛보는 순간보다, 다시를 통해 다른 재료를 더 잘 맛보게 되는 순간이 더 많은 것입니다.

자신의 맛을 앞세우지 않으면서 다른 재료의 맛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접시의 깊이를 만드는 것.

다시는 일본 요리의 가장 조용한 바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