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시작되기 전에
한 끼의 경험은 첫 번째 요리가 놓이는 순간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가장 먼저 공간의 색에 맞춘 테이블 린넨이 보이고, 손끝에는 그 표면의 질감이 닿습니다. 물잔을 들어 올릴 때는 유리의 두께와 무게가 전해지고, 젓가락을 내려놓는 자리에는 그 계절을 닮은 작은 생화가 놓여 있습니다. 음식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여러 감각은 공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파인다이닝에서 맛은 디쉬 안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같은 요리라도 어떤 공간에서, 어떤 기물과 함께, 어떤 감각을 거쳐 마주하는지에 따라 한 끼의 인상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하쿠시에서는 요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작은 요소들까지 식사의 일부로 생각합니다. 린넨의 색과 질감, 손에 잡히는 물잔의 감촉, 테이블 위 작은 생화의 형태. 각각은 그 자체로 시선을 끌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요소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겹쳐지고, 그 중심에 음식이 놓였을 때 비로소 하나의 장면이 완성됩니다. 그리고 식사가 시작되면 감각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디쉬로 이동합니다. 눈으로 보고, 향을 맡고, 손끝으로 기물을 느끼고,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으로 맛을 경험합니다. 하나의 디쉬를 먹는 동안에도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감각을 동시에 사용합니다.
하쿠시가 만들고 싶은 것은 맛있는 요리만으로 완성되는 한 끼가 아닙니다. 요리를 중심으로 공간과 기물, 향과 소리, 손끝에 닿는 감각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시간입니다. 식사가 끝난 뒤 모든 디쉬의 맛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날의 공간과 감각이 하나의 인상으로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하쿠시에서의 한 끼는 첫 디쉬보다 조금 먼저 시작되고, 마지막 디쉬보다 조금 늦게 끝납니다.
Editor 김하은 @Haeu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