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PECTIVE 02: 하나의 요리는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가
한때 요리의 국적은 꽤 많은 것을 설명했다. 프렌치, 이탈리안, 재패니즈라는 이름에는 재료를 다루는 방식부터 조리법과 식사의 형식, 오랜 시간 축적된 미감까지 하나의 문화권 안에서 만들어진 질서가 있었다. 어느 나라의 요리인가를 아는 것은 곧 그 요리가 어떤 세계에서 왔는지를 아는 일이었다.
지금도 그 이름들은 유효하다. 다만 그 이름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요리가 많아졌다. 서울에서 프렌치를 하는 셰프들은 한국의 바다에서 올라온 생선과 이 땅의 채소를 다루고, 이탈리안을 기반으로 하는 레스토랑에서도 한국의 생산자와 계절을 이야기한다. 일본 요리를 배운 한국인 셰프의 접시에도 서울에서 살아가는 현재와 자신이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맛이 스며든다. Korean French, Korean Italian, Korean Japanese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워진 것은 이러한 변화의 한 장면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국이라는 정체성이 기존의 요리 위에 단순히 하나의 요소로 더해지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익힌 조리의 문법은 여전히 요리의 뼈대를 이루고, 그 안으로 지금 살아가는 장소와 재료, 개인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서로 다른 출처를 가진 것들이 한 사람 안에서 굳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디쉬로 나타난다.

셰프에게 수련은 긴 시간에 걸쳐 하나의 기준을 만든다. 재료를 보는 법, 불을 다루는 법, 맛의 균형을 잡는 법, 무엇을 더하고 어디에서 멈출지를 판단하는 감각은 반복을 거치며 몸에 남는다. 프렌치나 일본 요리라는 이름이 단순한 기술의 목록보다 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무엇을 만드는가뿐만 아니라 재료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방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쉐프에겐 요리를 배우기 훨씬 전부터 먹어온 음식이 있고, 이미 형성된 미각이 있다. 이후 여러 도시와 주방을 거치며 새로운 감각이 더해지고, 자신의 레스토랑을 연 뒤에는 다시 지금 서 있는 장소와 긴 관계를 맺는다. 오늘 들어온 생선의 상태를 보고, 계절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채소를 만나고, 생산자와 관계를 쌓는 시간이 또 다른 경험으로 축적된다.
지금 한국의 다이닝 씬에서는 이런 시간들이 한 접시 안에서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때 멀리 있는 것을 배우기 위해 떠났던 셰프들이 돌아와 자신이 배운 것을 펼쳐 보였다면, 시간이 쌓인 뒤에는 시선이 조금씩 자신이 서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한국의 식재료와 생산자, 장과 발효 같은 오래된 음식문화가 다시 보이고, 때로는 너무 익숙해서 요리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자신의 미각과 기억도 새롭게 읽힌다.
여기에는 ‘한국적인 요리를 해야 한다’는 선언보다 더 개인적인 움직임이 있다. 다른 문화의 요리를 깊이 배운 사람이 어느 순간 그것을 재현만하는 것에서 멈추고 자신의 취향과 경험을 통과시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가져다 붙이는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이미 그 사람 안에 존재하던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오늘의 Korean Japanese에서 Korean과 Japanese의 비율을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둘은 한 접시 안에서 같은 종류의 정보를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Japanese가 오랜 시간 익혀 온 요리의 문법을 가리킨다면, Korean은 태어나 자란 문화이면서 지금 요리하는 장소이고, 사용하는 재료의 풍토이자 개인에게 축적된 미각의 기억이기도 하다. 하나의 이름 안에 서로 다른 성격의 시간과 장소가 포개져 있다.
이 지점에서 ‘국적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익숙한 표현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흐려진 것이 아니라 한 접시를 이루는 좌표가 많아진 것이다. 셰프가 배운 전통의 출발점은 여전히 존재하고, 태어나 자란 문화도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살아가는 도시와 매일 만나는 재료 역시 현재의 요리를 바꾼다. 어느 하나가 나머지를 대신하지 않은 채 동시에 작용한다.
쉐프가 국경을 넘어 배우고 여러 문화권의 주방을 경험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오늘, 요리 역시 하나의 장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 곳에서 배운 전통과 기술은 사람을 따라 다른 도시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재료와 계절, 또 다른 경험을 만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배운 것을 더 깊이 이해하기도 하고, 그 위에 이전에는 없었던 또 하나의 층을 만든다.
그래서 한 접시의 국적을 묻는 일은 이제 그 요리의 출발점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만큼 누구의 시간을 통과했는지가 중요하다. 한 사람의 요리에는 배운 곳과 살아온 곳, 떠났던 곳과 돌아온 곳, 오래 기억해 온 맛과 오늘 처음 만난 재료가 함께 존재한다.

한때 우리는 요리의 정체성을 그 출발점에서 찾았다. 이제는 그 요리가 지나온 경로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재패니즈에서 시작된 요리가 서울에서 한국인 셰프의 시간을 통과했다고 해서 재패니즈라는 뿌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한국이라는 정체성이 그 위에 덧씌워지는 것도 아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가 한 사람 안에 축적되고, 그 사람의 판단을 거쳐 이전에는 없던 하나의 요리가 된다.
한 접시의 국적은 더 이상 지도 위의 한 지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이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먹으며, 어디를 지나 지금 이곳에 서 있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오늘의 요리를 설명하는 것은 하나의 국적이 아니라, 그 국적들이 한 사람 안에서 쌓여 온 방식이다.
Editor 김하은 @Haeun Kim